한류가 나아갈 방향

| 기사입력 2017/06/12 [12:33]

한류가 나아갈 방향

| 입력 : 2017/06/12 [12:33]

내가 알고 지내는 미국인 교수 하나는 ‘한류’라는 것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지역에 근거하여 생겨난 문화적 현상이 공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다양하다. 한때 특정 계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다가도 아예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구축된 경제 시장의 통합과정에서 이색적인 문화상품이 예상 밖의 호응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문화적 현상으로 정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미국인 교수는 ‘한류’라고 이름붙인 문화적 현상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는 ‘싸이’라는 가수의 인기가 금방 시들해진 것을 그 구체적 사례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년전의 ‘대장금’이나 최근의 ‘태양의 후예’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저 특이한 사례 하나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한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거두어들인 성과에 대해서도 세계무대의 문턱에 들어선 정도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은 좀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한류’의 확산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한국문화와 관련하여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주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곤 한다.

한국의 생활문화 가운데 음식이라든지 패션에 대한 감각은 이미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보편화되고 있다. 대중 매체의 확장과 멀티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어 대중적 취향을 강조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지구적 확산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등이 다른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빠르게 전파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문화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계문화 속에서 그 위상을 재정립하게 된 것이다. 

나는 특히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을 주목한다. 한국어는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접촉하기 어려운 작은 언어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국의 중요 대학들은 한국어를 외국어의 하나로 정식 강좌로 교육한다. 미국과 유럽의 중요 대학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비교적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근래에는 동남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한국어가 대학의 인기 있는 외국어 과목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들이 늘어가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중남미의 주요 대학들도 한국어를 정식 강좌로 가르친다.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에서 해마다 초급 한국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 수가 대략적으로 8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이것은 한국어가 ‘세계어’의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어 교육의 세계적 확산이 주목되는 이유는 언어 자체가 바로 그 언어로 이루어지는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어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한국문화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문화는 한국어의 세계적 확산에 힘입어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 현상으로 세계 각국에 유포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지만 나도 역시 ‘K팝이라든지 K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 중심으로 논의되는 ‘한류’에 대해서는 불만이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한국 문화산업의 해외 확대와도 같은 상업적 논리로만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상품의 소비와는 다른 문화의 전파와 그 수용의 확대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것은 가격과 품질과 패션에 의해 좌우되는 상품 시장의 경쟁 원리와는 전혀 다른 요건들에 의해 지배된다.

한국문화는 이질적인 외국문화 속에 들어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조화롭게 만나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그 영향력을 키워간다. 이것은 문화의 양식적 특성과 그 정신에 대한 고급한 취향과 선택의 문제에 의해 수용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이 같은 문화적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요소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조직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국문화는 산업화 과정에서 이룩해낸 경제 발전과 사회 정치적 민주화의 실현을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그 창조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 민족의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한국문화라는 개념은 민족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민족사의 변혁 시대의 산물이었다. 세계화 시대의 한국문화는 민족이라는 좁은 울타리 속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민족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한국문화는 독창성을 지닌 고유한 민족문화로 발전하면서 차원 높은 세계문화의 대열에 함께 동참할 수 있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한국문화가 지켜온 문화적 고유성에 대하여 외국인들이 어떤 자세로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지에 대한 고급한 취향과 관심에 의해 그 성패가 좌우된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한국문화의 방향을 시대적 순서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간적인 본질 개념으로 바꾸어 놓고 보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의 관점에 대한 일대 전환이다. 한국문화가 지켜온 문화적 자기 정체성을 지켜 나가면서도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어떻게 공간적으로 확장된 세계적 보편성으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의 확대,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의 전환, 이것이 바로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직면하고 있는 선결과제이다. 

 

글    권영민(단국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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