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의무 없어도 자원입대

군 체험 수기집 '대한사람 대한으로'를 발간했다.

 병무청이 국외이주 또는 질병 사유로 현역병 입영의무가 없음에도 자원해 현역복무를 한 젊은이들의 군 체험 수기집 ‘대한사람 대한으로’를 발간했다. 

이번 체험수기집은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2개월에 걸쳐 영주권 및 질병치유 병사 등 ‘자원 병역이행자 군 체험수기’ 공모에 응모한 총 116편 중에서 우수작 28편을 모아 발간했다. 

영주권병사 부문에서 ‘내 마음속 살아있는 대한민국’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오승주 일병(22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 미국 영주권을 취득해 사실상 입영의무가 없으나 자원 입영했다. 참고로  외국의 영주권을 받은 사람은 만 37세까지 병역의무 이행이 유예되며, 만 38세 때 병역면제 처분을 받는다.

오 일병은 “외국 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조국에서의 군 복무를 통해 시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고 청춘의 보람됨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면서 병역을 소극적인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생의 소중한 기회로 삼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질병치유 병사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지준교 상병(22세)은 “대인기피증과 고도비만을 치유하고 자진 입영, 군 복무를 하면서 가족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되찾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밝혔다.

병무청 관계자는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 영주권·질병치유 병사들의 군 체험담이 병역이행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지침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 마음속 살아있는 대한민국 (국외이주 분야 / 최우수상 / 일병 오승주)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라면 누구든지 병역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청소년기, 아니면 유소년기부터 어떻게든 군대에 오는 것을 피하려고 온갖 방법을 구상해 봤다는 걸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다 알 것이다. 내가 그런 마음가짐을 갖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왜 나는 주변 친구들처럼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는지 부모님께 어리석은 원망을 했었다. 정작 우연치 않게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니 나는 입대를 택했다. 후회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나는 입대한 날부터 매일매일 후회하고 있다고 대답을 한다. 작전병 업무와 매 근무가 고된 작전상황 근무를 한 달에 열 번씩 하다 보니 잠시 바람 쐬러 나갈 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울뻔도 했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었다면 기분이 좋은 적도 있었다.

부대 내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갈망하였지만 그 중 가장 원하고 그리워한 것은 바로 ‘창작의 기쁨’ 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영상 제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입대 전까지도 TV영화학을 전공하고 인디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나의 꿈을 쫓고 있었다. 음악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으며 원래 입대를 한다면 정훈병이 되고 싶었다. 허나 대학 선배들의 권유와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어학병에 도전을 하게 되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나는 영상도, 영어도 작업할 기회가 흔치 않은 작전병이 되었다.

처음에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 업무 인수를 받고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보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제한들이 나의 꿈을 더욱 키워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새벽, 한두 줄로 시작한 글들이 소설로, 기사로, 또 영화 시나리오로 커나가고 있었다. 창작에 대한 갈증은 첫 휴가를 나갔을 때도 작업실에 앉아서 밤새 녹음을 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내가 왜 군대에 오기로 한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못 내린 것 같다.
다만, 이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또 그 기간 동안 어떤 것을 얻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이제 대충은 실마리를 잡기 시작했으니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으며 나는 나아가려 한다. 입대한 날부터 전역하는 그날까지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나 해답을 바라고 있지도, 기대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떠내려가듯이 나아가다 언젠가는 내가 나라에 희생하고 있는 이 청춘이 보람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키고 있는 이 나라에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씩씩이(질병치유·학력변동 분야 / 최우수상 / 상병 지준교)

육군 준위로 군 복무를 하고 계셨던 아버지는 복무 중 큰 사고로 전역을 하셨고, 국군수도병원에서 1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다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는 바람에 성적이 떨어진 우리 남매의 교육을 맡게 되었다.

예상 못 했던 사고로 예정보다 빠르게 전역을 했던 탓에 아버지는 우리에게 기대를 거는 마음이 커졌고 조금 더 엄격하게 하며, 우리가 힘들어하면 다그치기에 바쁘셨다. 사춘기였던 나는 점점 더 삐뚤어졌고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풀어 살은 점점 더 찌기 시작해 결과적으로 체중이 계속 불어나 120kg의 고도비만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군인이셔서 입대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하지만 입영 후 신체검사를 했는데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을 때는 3급이었지만 입대 전 살이 너무 쪄 BMI 지수가 너무 높아 현역 부적합 판정이 나왔다. 훈련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때는 참 지루하고 나가면 할 것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게 쫓겨나니 나 자신이 너무 창피했고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은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찾아왔다.

그때 아버지가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얘기해주며 “씩씩아 네가 뭘 하든 응원 하겠다”라는 말을 하셨다. 그 당시 나는 BMI 지수가 38이었고 현역 등급인 3급은 20kg 가량 감량해야 했다. 그런 고민을 아버지와 상의를 했고, 아버지와 등산을 한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결국 체중감량에 성공해 병무청에서 당당하게 현역 등급을 받아 2016년 5월 2일 논산훈련소로 두 번째 입대를 했다.

입대 한 지 13개월이 지났지만 자원입대를 한 것에 후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원입대했다는 사실에 전우들이 놀라며 대단하다고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낸 선배 전우들이 했던 일들을 하는 것뿐이니까. 지금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게 휴전국가에서 지내고 있는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체중감량을 해서 자원입대한 것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군대는 대인기피증에 우울증 환자였던 고도비만 청년의 우울했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혼자 이루어낸 결과는 절대로 아니다. 나는 밖에서 군대에 거부감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에 달렸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고.
목표를 이루는 순간이 얼마나 찬란한지 아는 사람으로서 당연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이 말을 꼭 기억하라고 전하고 싶다.

 

출       처   병무청

기사입력: 2017/09/04 [12:08]  최종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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