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행복 바이러스

3대가 같이 사는집

| 기사입력 2017/10/18 [14:05]

아이들은 행복 바이러스

3대가 같이 사는집

| 입력 : 2017/10/18 [14:05]

   서울시 은평구에서 삼대가 모여사는 민수네 집은 오늘도 북적거린다. 할머니 우옥분(64) 씨는 “삼대가 함께 사니까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의 품에는 생후 40일 된 셋째 김시우 군이 안겨 있다. 김부원(39)·이소라(37) 씨 부부는 첫째 김민수(6) 군을 낳으면서 부모님과 합가했다.

“사실 결혼 전부터 넌지시 부탁드렸죠. 아이 낳으면 어머니가 좀 돌봐달라고요. 현실적으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처가는 멀고… 우리 둘이서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김부원)

아들의 부탁에는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가 당연히 애정을 갖고 돌봐주겠지만 여기에 더해 당시 베이비시터로 일하던 우옥분 씨의 능력을 믿은 것이다.

“제가 그때 한 가정에서 갓난쟁이를 다섯 살까지 키웠거든요. 돌이켜보니 베이비시터 일을 하면서 육아에 대한 트레이닝을 확실히 한 셈이죠.”(우옥분)

어찌 보면 정년퇴임을 한 뒤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 할 시기에 육아라는 큰 짐을 떠안은 셈이다. 할아버지 김형석(63) 씨도 아들 부부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하며 힘을 보탰다.

“아이들이 행복 바이러스 그 자체잖아요. 손주 녀석들을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웃음이 나오니까요. 둘이 살 때는 조용한 게 좋았는데, 지금은 조용하면 적적하고 이상해요. 복작거리며 사니까 여기에 적응됐나 봐요.”(김형석)

 

 

대가족의 훈훈함, 넉넉함에 대 만족

처음부터 대가족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이소라 씨는 첫째를 낳으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았다. 15년 차 패션 디자이너인 그녀는 “일이 주는 성취감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일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제왕절개로 아이 둘을 낳은 터라 신체적인 부담도 컸다. 그런데 민수(6)와 태양(3) 군을 낳고 보니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슬그머니 딸 욕심도 났다.

“남편도 저도 외동이거든요. 저는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셔서 어렸을 때 혼자 집에 들어갈 때면 컴컴하고 썰렁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식구들로 복작거리고 집안에 훈기 도는 게 너무 좋았어요.” 

셋째 김시우 군도 아들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셋째는 거저 키운다’는 말이 실감될 정도로 순하고 무던하게 크는 중이다. 

아버지와 자식 세대의 추석 풍경은 다르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추석 명절을 보내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귀성길이 혼잡하지만 1970년대에는 ‘서울에서 150만 명 이상이 빠져나갔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왔다. 서울역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경찰이 장대를 들고 귀성 행렬을 통제하기도 했다. 압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송편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고 조상을 모셨는데, 지금은 자식이 귀하니까 모여도 단출하죠. 대부분 외동이니까 이제는 삼촌, 고모, 이모가 없는 시대가 돼버린 것 같아요.”(김형석)

김형석 씨는 형제, 자매나 남매의 부재로 단순해지는 가계도를 안타까워했다. 이대로 간다면 삼촌이나 고모, 이모의 존재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대가족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넉넉함과 훈훈함은 잃어버릴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하다. 우옥분 씨는 결혼 당시를 떠올리며 시동생에 대한 고마움을 풀어놓았다.

“이 사람이 6남매 중에 첫째였는데, 저는 6남매 중에 막내라 결혼했을 때도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풍로로 밥 해먹을 땐데, 그거 켤 줄도 몰랐으니까. 근데 그때 중학생이던 막내 시동생이 눈치를 채고 밥할 때마다 ‘형수님, 제가 불 켜드릴게요’ 하면서 일어나는데 그게 그렇게 고맙더라고요.”(우옥분)

추석 풍경 중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 중에 하나는 음식 장만이다. 과거에는 추석의 부산함을 시장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송편도 집에서 빚기보다 떡집에서 사먹는 경우가 많고, 차례 음식 대행업체도 성업 중이다.

“예전에는 식구가 많으니까 음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죠. 이웃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요. 근데 지금 그렇게 하면 처치 곤란이잖아요. 사먹어 보니까 그것도 맛있더라고요.”(우옥분)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명절이나 돼야 친척들의 얼굴을 보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오가며 안부를 전하고 설탕과 식용유 등 생필품들을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지금 저희 세대는 추석을 연휴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아이들이 셋이 되면서 진정한 휴일은 없어졌지만… 아버지 세대처럼 성묘를 가고, 차례를 지내고 하는 일들에 대한 의무감은 좀 희석된 것 같아요.”(김부원)

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충돌 없이 지내기란 쉽지 않다. 민수네 가족도 합가 초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불만이 있어도 어른이니까 아랫사람인 제가 참아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매일같이 얼굴 대하며 살아야 하는데, 말하지 않고 꿍해서는 살 수 없겠더라고요.”(이소라)

“우린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말해요. 저도 힘에 부칠 때가 있는데, 며느리를 보면 딱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그리고 열심히 사는 게 예뻐서 웬만한 건 다 넘어가게 되더라고요.”(우옥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갈등이 많을 수 있는 관계지만, ‘엄마’라는 공통분모와 ‘육아’라는 접점으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대가족 안에서 이해와 공감 능력 자연스럽게 키워

민수네 가족이 남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세대 간의 교류가 어느 집보다 활발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김형석 씨는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다. 손자인 민수는 할아버지를 “가장 좋은 친구”라고 말하고, 며느리 이소라 씨도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시아버지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김형석 씨는 “나이가 들수록 고집으로 괴팍해지기 마련인데, 이것을 경계해야 젊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렇게 대가족 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족 간의 갈등과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저출산으로 국가의 고민이 깊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할머니 우옥순 씨는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시대가 있었다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친구들도 아이 셋인 것을 부러워해요. 그걸 보면 젊은 사람들이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 거예요. 일자리도 불안정하고, 아빠육아휴직을 권장한다고 하지만 쓰는 사람이 이슈가 되는 게 현실이니까요. 법적으로 강제력이 있어야 아이 키우는 환경과 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합니다.”(김부원)

이소라 씨는 이번에 셋째를 낳고 구청에서 35만 원의 출산지원금을 받았다. 반면에 경기 평택에 사는 친구는 셋째 지원금으로 200만 원을 받았다. 전국 단위는 물론 서울 자치구 내에서도 지원금 편차가 많게는 5배 이상으로 벌어진다. 게다가 지급 방식이나 거주 요건, 신청 기한 등이 제각각이어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표준 가이드라인 제정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자녀 할인으로 전기료와 하수도, 도시가스의 30% 할인 혜택이 있지만, 피부에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김부원·이소라 부부는 단순 감면이나 지원금보다 보육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부모님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울 수는 없잖아요. 아이가 생겼을 때 여자들은 더 고민이 커져요. 육아문제도 있고 경력단절 문제도 피부로 다가오니까요”(이소라)

이소라 씨는 육아를 개인의 문제로 한정하면 여성의 사회 진출과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정착되는 시대에 유일하게 늘어나는 가족 형태가 아이를 낳은 젊은 부부와 부모 세대와의 결합이다.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젊은 부부들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꼭 육아 때문이 아니라 가족의 정으로 삼대 가족 같은 대가족이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출      처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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