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체성 정립 시급해

헌법의 가치 부정, 안된다

교과서 내용의 논란의 핵심은 잘못된 역사관과 역사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 기사입력 2011/06/01 [09:24]

국가정체성 정립 시급해

헌법의 가치 부정, 안된다

교과서 내용의 논란의 핵심은 잘못된 역사관과 역사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 입력 : 2011/06/01 [09:24]
박효종(朴孝鍾) 서울대학교 교수는 밝은사회실천전국연합이 5월 24일 서울가든호텔에서 주최한 밝은사회실천포럼에서 ‘올바른 국가 정체성 정립, 시급하다’란 주제(부제 : 대한민국의 발전 동인(動因)과 향후 과제)를 발표했다. 

 <발표문>

올바른 국가정체성 정립, 시급하다
박효종(서울대 윤리교육과)

Ⅰ. 역사교과서 논란은 ‘사실(史實)’보다는 ‘사관(史觀)’의 문제

2011년 2월15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 역사교과서 개정과 역사교육방향을 결정할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이 기구는 역사교육을 국가차원에서 새 틀을 짜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동안 근현대사 교과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었죠. 교과서라는 점의 특성상 학문적 쟁점을 넘어 사회적 쟁점이 된 것입니다.
역사교과서 논란의 핵심은 무엇이었던가요.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했던 것은 기존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적 시각에서 쓰여 졌다는 점이 아니었습니다.
또 우편향적 시각에서 쓰여져야 비로소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된다고 주장한 것도 아니죠.
사상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국가에서 일정 수준의 좌편향과 우편향은 허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근현대사 교과서가 국정이 아니라 검정교과서인 만큼, 교과서를 두고 이른바 ‘문화전쟁’까지 벌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한 공동체내에서 도덕적 가치나 국가정체성을 역사의 어느 부분에서 찾을 것인지, 혹은 보다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두고 강조점을 달리하며 긴장과 갈등이 벌어지는 일은 다원주의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요.
하지만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역사교과서가 헌법적 가치나 국가정체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수준까지 나아가게 되면, 다원주의의 허용된 한계를 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죠.
교과서가 헌법적 가치를 수용하는데 좌파라고 해서 다르고 우파라고 해서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건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부정과 긍정으로 나누어진다면, 제대로 된 시민적 정체성은 길러질 수 없습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물론 과도한 특정 이념이나 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도 역사논문이나 역사서를 쓸 수 있습니다. 또 이른바 ‘반골(反骨)’이라도 역사서를 쓸 수 있죠. 그러나 역사교과서는 안됩니다. 왜 일까요.
학교용 교과서, 즉 미래의 시민인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고 익히며 시험을 치는 대상인 역사교과서라면 헌법적 가치나 국가의 기본정신을 담고 있어야하기 때문이죠. 만일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사관이나 서술이 횡행한다면, 교육과정에서 허용되는 편향의 수준을 넘어간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기존 역사교과서에 대한 문제제기의 핵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기존 교과서를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해 ‘현대사’를 배우고 익히게 되면 건전한 역사의식을 가진 ‘건강한 시민’이 될 수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을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이룩한 ‘자랑스러운 나라’라기보다는 좌우합작에 실패한 ‘부끄러운 나라’로 생각하며, 혼란스러웠던 해방공간의 와중에서 건국의 결단을 내린 이승만대통령과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한반도의 분단 책임을 묻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건강한 국가정체성을 지닌 ‘대한민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1945년 한반도의 남쪽에 진주한 미군은 ‘점령군’인 반면, 북쪽에 진주한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다고 배운다면, 그보다 더한 사실왜곡이 있을까요.
또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가 질서있게 가꾸어져 온 나라고 남한의 ‘한국적 민주주의’는 오직 ‘독재’와 ‘억압’이 자행된 나머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고 배운다면, 어떻게 진정한 나라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도 자유와 인권을 위해 피를 흘리며 방어한 전쟁이 아니라 남과 북의 충돌속에 확대된 내란에 불과하다고 믿는 ‘외눈박이’ 사관의 희생자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동안 계속됐던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의 핵심은 학생들에게 특히 현대사를 성공한 ‘대한민국 역사’로 가르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한 ‘좌우 합작의 역사’로 가르칠 것이냐 하는 문제였던 것이죠.
미래의 시민인 고등학교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고 시험도 치는 근·현대사를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로 재조명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근현대사교과서 논란의 핵심이었던 부분은 잘못된 표현이나 잘못된 사실(史實)의 기술보다 잘못된 사관(史觀)과 역사인식의 문제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라면 우리가 피땀 흘려 가꾼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단독정부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교과서 기술이죠.
표면적으로 볼 때는 실패한 ‘좌우 합작’의 중립적 입장을 표방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성공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는 정통성 결여를 암시하고 오히려 전체주의적 성향의 반인권국가인 북한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반(反)헌법적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다면, 대한민국교과서로는 부적절합니다.
학생들은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을 통해 대한민국을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강변해왔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역사가 ‘치욕의 역사’가 결코 아니고 가난과 절망을 풍요와 희망으로 대치하고 독재와 불의를 정의와 민주주의로 극복해나가는 불굴의 의지가 꽃피운 ‘성공의 역사’임을 배워야 합니다.
또 대한민국은 건국 후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6·25전쟁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나, 놀라운 호국정신을 발휘하여 자유·민주·인권을 지켜냈죠. 뿐만 아니라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여 경제·정치적으로 도약함으로서 오늘날 부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되었음도 알고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하여 민족통일을 주도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이념적·경제적 토대를 탄탄히 다지고 통일한국의 정통성을 확보했음도 알아야죠. 또 혹독한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기아선상에 놓여있는 북한 동포들에게도 현실적인 구원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추게 된 국가임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역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은폐하거나 왜곡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역사적 나르시시즘’이란 ‘역사적 매저키즘(masochism)’ 못지않게 경계해야할 금기사항이 아닌가요.
우리의 역사는 무거운 돌을 산꼭대기에 올려놓은 것에 비견될만한 성취였지만, 그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성취였기에,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험난한 여정이었고 때로는 억울한 희생자들이 속출한 통한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배우는 ‘현대사’라면 우리 역사의 부정적 사실들도 사실대로 기록하고 이에 대한 반성 또한 기술함으로써 앞으로 그 같은 부정적 역사가 재연되는 것을 경계하는 데 인색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 역사교과서의 문제는 자랑스러운 부분까지 수치스러운 역사로 덧칠되고 있다는 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술되어야 할까요.

Ⅱ. 대한민국건국,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지난 20세기에 이루어진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을 꼽는다면, 단연 1948년 8월15일의 ‘대한민국건국’, 즉 ‘대한민국정부수립’이죠. 이 사실은 대한민국 정치공동체의 온전한 구성원으로서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지닌 시민이라면 당연히 알고 익혀야할 사실입니다.
제헌헌법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자유와 인권, 및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제한된 정치권력을 규정한 영국의‘권리장전’이나 프랑스대혁명의 자유·평등·박애의 이상 및 미국의‘독립선언서’에서 나타난 생명·자유·행복추구권 등의 이상과 같은 맥락의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죠.
대한민국 건국 이후 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근대적 ‘개인(個人)’이 탄생할 수 있었죠. 엄격한 신분제도 마침내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능력과 희망으로 꾸려나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왕조시대와 비교할 때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자랑스러운 민족사적 쾌거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이처럼 대한민국 건국은 우리 민족의 활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국가공동체가 지향하고 있는 통일과 번영의 실현을 위한, 의미심장한 첫 걸음이라는 것이 기술되어야 합니다.

Ⅲ. 6·25, 자유수호를 위한 전쟁

6·25는 우리민족에게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넋 속에 오랫동안 치유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긴 재앙이며, 비극이죠. 그럴수록 앞으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정확하게 의미부여를 해야 합니다.
‘조국해방’이란 명목아래 북한이 전체주의성향의 사회주의체제와 이념으로 한반도를 지배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도발한 전쟁이 6·25이죠. 이로써 당시 대한민국의 건국을 통해 수립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시장질서가 심각한 위협을 받았으며, 민주공화국의 생존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사살만 부각시켜서는 안 되죠.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은 더욱 극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기술해야 합니다.
물론 휴전으로 귀결되어 전쟁이전과 별다른 영토의 변화는 없었고 지금까지 분단상태는 지속되고 있지요. 하지만, 6·25전쟁은 남침한 북한에 맞서 남한이 싸웠다는 민족상잔의 차원을 넘어, 또 냉전체제하에서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 팽창의도에 맞서 미국 등 국제연합이 싸운 국제전이라는 성격을 넘어 한반도를 적화하겠다는 결의를 다진 북한전체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남한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및 시장질서를 방어한 전쟁으로 평가해야죠.
이런 가치론적 사실을 도외시하고 단순히 전쟁의 인명피해, 경제적 피해 등만을 강조한다면, 이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많은 사람들은 결국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참극에 연루되어 부조리한 행동과 도로(徒勞) 및 허무한 희생을 한 셈이 되지 않을까요.

Ⅳ.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던 ‘6070 산업화’

한국에서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부였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이룩한 산업화는 기적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기 소르망이 “비서구권에서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며 특히 한국은 단기간에 압축성장한 모범국가”라고 평가했을 정도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 수많은 인권탄압 사례와 자유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을 가볍게 보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또 지나친 압축성장의 추진의욕이 국민에게 상당한 희생을 강요한 측면도 있죠. 그것은 결코 작은 허물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이 문제는 세계사적 안목과 비교사적 시각에서 더 넓고 긴 안목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은 농촌의 붕괴, 전통적 생활양식의 파괴, 노동자 착취 등 참으로 많은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선발산업화 국가인 영국이나 후발산업화 국가인 독일,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가 이런 희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의 사례를 다룬 폴라니(K. Polany)의 ‘대변혁’은 바로 이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죠.
우리는 산업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손실과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당시의 절박한 시대적 요구와 국민들의 절실한 염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대다수 국민이 실업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상황에 놓여 있었죠.
‘민주’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빵을 선택한 것을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직장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받던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빵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가치라고 주장할 근거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빵의 선택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토대노릇을 한 의미 있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죠.
따라서 교과서에서는 한국이 직면한 당시 상황을 균형적으로 고려하면서 6070 산업화 시대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할 것입니다.

Ⅴ. 굳건한 주춧돌위에서 이루어진 ‘87 민주화’

오랫동안 민주주의는 우리의 염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건국이후 줄곧 엄청난 시련과 도전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배타적으로 독재자의 권력욕과 권력의지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요.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단순화의 오류’를 범한다고 할 수 있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다차원적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선 외부의 침략세력으로부터 오는 도전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지요. 또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수준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후진성과 절대적 빈곤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점은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지요. 서구의 민주주의가 그 문화와 관습, 역사배경이 다른 나라에 이식되어 제도화되는 데는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해야 합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데는 수많은 조건과 도전들이 엄존하고 있는데, 이 모든 요소들을 간과한 채 오로지 독재자의 권력의지만을 민주주의의 시련으로 접근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어젠다를 너무 단순하게 보기 때문이죠.
물론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4·19민주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희생과 헌신은 교과서에서 충분히 평가받아야죠.
하지만 민주화 운동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처럼 한국 민주주의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구조의 거시·장기적 변화라는 토대가 없었다면, ‘87 민주화’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핵심적 가치로 규정한 제헌헌법의 제정, 위로부터의 농지개혁, 1950년대의 교육혁명, 그리고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안정을 위한 굳건한 주춧돌을 놓았던 사실도 아울러 지적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Ⅵ. 정상적인 사회주의국가에도 못 미치는 북한

기존 역사교과서의 문제점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대한민국의 성취에 대해선 가혹하기 짝이 없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죠.
특히 북한의 참담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서술로 북한체제를 미화한다는 점이 큰 문제였습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전체주의적 지배체제와 그 문제점을 중립적인 어조로 소개하고 있을 뿐, 공산주의사회에서 조차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억압과 사적 영역의 소멸, 개인숭배, 및 반인권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어요.
예를 들면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권력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가하는 반면, 북한의 천리마 운동에 대해선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큰 역할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의 토지개혁은 성공적이라고 하는 반면, 남한의 토지개혁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고 저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토지개혁은 농민들에게 소유권이 아니라 경작권을 준 것에 불과했죠. 결국 50년대 후반에 이르러 북한은 협동농장체제로 바뀌어 토지개혁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죠. 이에 반해 남한은 농민들에게 소유권을 준 것이죠. 또 토지개혁의 결과 지주들이 기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어요.
뿐만 아니라 1994-1997년 약 300만 명의 북한 동포가 굶어 죽은 대규모의 참극과 그것을 빚어낸 북한체제의 모순에 대해서도 침묵해왔죠. 그 대신 중국식 개혁이나 베트남식 개혁 등, 개혁다운 개혁을 한 번도 결행한 적이 없는 북한 지도부에 대해서는 북한도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나름의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식으로 우호적으로 변론하고 있었죠. 북한체제에 대한 몰(沒)이념적 무비판과 우호적 서술의 이유라면, ‘민족끼리’라는 몰가치적 민족주의의 과잉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체제에 대한 무비판은 교과서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요.
분명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세계적으로 엄존했던 자유주의 대(對) 전체주의의 대결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국가사회주의와 계획경제는 자유와 인권, 자율, 사적영역의 보장, 인본주의라는 인간의 천부적 가치에 반하는 체제와 이념이었음이 판명되었습니다. 국가사회주의는 바로 그와 같은 반인륜적 반인권적 가치추구로 인하여 결국에는 내면에서부터 붕괴되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체제는 그나마 사회주의 체제로부터도 변질된 절대수령체제가 아닌가요.
이런 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국가건설자들은 혼란된 해방공간의 와중에서 암중모색하는 가운데 이념과 가치적으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또한 바로 그 이유로 인하여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동의와 공감 및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국가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반대하는 반공주의가 스피노자의 표현대로 ‘영원한 빛아래(sub specie aeternitatis)’ 정당화될 수 있는 ‘가치와 이념’이라고 단언할 필요는 없을 거에요.
하지만 적어도 “시대의 빛아래(sub specie durationis)” 조망해볼 때, 우리가 취한 최선의 이념적 가치와 선택이었습니다. 이 선택은 동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많은 국민들의 자발적 선택이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고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대 한국인들이 택한 이념적 선택과 실천을 단순히 강압적인 ‘극우반공독재’에 대한 순응으로 간주하는 지적흐름이 있다면,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눈감은 왜곡된 인식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북한처럼 사회주의 일당독재체제를 선택하였다면, 지금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반공주의에는 오남용이 많았죠.
정적을 제거하는 권력의 수단이 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공주의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라거나 권력욕의 수단이라고 비하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중세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실천과 비슷합니다. 중세 기독교신자들은 십자군전쟁을 통해 이슬람신자들을 대량으로 가혹하게 죽이기도 하고 이단을 없애겠다는 명분아래 창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오·남용적 실천이었을 뿐, 그리스도교적 신앙자체가 잘못되었다는 평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반공주의도 그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공의 자유당정부가 1958년의 진보당사건의 경우처럼 조봉암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자들까지 처형한 것은 권력의 탐욕이 빚어낸 반공의 참담한 오·남용사례임에 틀림없죠. 하지만 이것은 반공이념이나 반공체제가 ‘그 자체로’ 거대한 악이라는 문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발생한 모든 악은 반공에서 기인했다는 식의 서술은 교과서에서 지양될 필요가 있죠.

Ⅶ.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가 되어야

한국사회에서 교과서의 위상은 각별합니다.
교과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고 익혀야할 기본 자료가 될 뿐 아니라 내신 성적의 기초가 되는 학교시험에서도 핵심적 자료가 되며, 특히 대학입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수능시험의 기초 자료가 되고 있지요.
이런 교과서에 대해 한국의 현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삶은 물론, 풍요하고도 역동적인 사회·정치·경제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는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청소년들이 건전한 역사의식을 가져야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우리가 ‘화성에서 온 남자’나 ‘금성에서 온 여자’가 아닌 바에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덕적 가치관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올바로’ 또 ‘정확하게’ 인식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까닭입니다.
국가공동체는 주권과 영토, 국민으로 이루어진 객관적 실체입니다. 그럼에도 “국가란 영혼으로 존재한다”고 설파한 어니스트 르낭(Ernest Renan)의 통찰은 두고두고 음미해 보아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군요.
영혼으로 존재하는 국가공동체의 역사는 국민들에게 자존감과 정체성, 및 정신적 뿌리를 제공하죠. 국민으로서의 한 개인은 ‘국가의 영혼’에서 도덕적 정체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게 마련입니다.
바로 이것이 역사교과서에서 ‘국가의 이야기’가 특정학파나 특정이념의 주장을 넘어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와 국가적 지향점을 담아야하는 이유인 것이죠.
그동안 우리사회에는 반외세·민족해방을 표방하는 좌파민족주의가 팽배했습니다. 외세반대와 제국주의적 수탈거부, 및 저항적 민족주의를 근저에 깔고 있는 좌파민족주의는 80년대 좌파운동권의 활성화와 때를 같이하여 대한민국사를 정의가 패배한 어두운 역사로 매도하면서 건국의 정당성부터 부정하는 독특한 담론을 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좌파민족주의자들은 정부수립은 물론, 산업화 등, 그들의 힘으로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민주화이외에 선배와 부모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들을 ‘성취’라기보다는 ‘문제점’이나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판독해왔던 것이죠.
그런 좌파민족주의가 여과없이 역사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이 문제죠. 그 결과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피땀 흘리며 일구어온 기념비적 사건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해주는 ‘기억의 사회화’야말로 교과서의 주된 기능임에도 ‘진실에 입각한 기억의 사회화’보다는 ‘편향된 기억의 정치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의 정치화’가 팽배한 교과서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공론의 장에서 호소해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교과부가 한 때 수정지시를 내림으로 일부 표현은 수정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바른 역사쓰기는 아직 만족스러운 형태로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출판된 고교 한국사 교과서 총 6종을 보면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새 교과서에서 지나친 좌편향적 서술은 상당부분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문제점은 적지 않죠.
6·25전쟁 중, 국군과 미군의 민간인 사살만 크게 부각시킨 반면, 북한군의 민간인사살은 평이하게 서술했죠. 또한 분단문제가 이승만 박사의 책임인 것처럼 서술하고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우리보다 먼저 단독정부수립에 착수한 북한에 대해서는 별로 지적이 없군요. 북한의 토지개혁이 갖는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성공적인 토지개혁인 것처럼 말이죠.
앞으로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 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사상사의 제반분야에서 이룩한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섭취한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가 나와야 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만족스러운 교과서가 나올 수는 없겠죠.
하지만 만족스러운 역사교과서가 나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역사학계와 다른 학문분야와의 허심탄회한 교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로써 역사인식이 공감대를 이룬 후 바른 역사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집니다.
 
 
출      처  밝은사회실천연합
기사작성  장애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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