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석성

고려때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여몽연합군과의 격전으로 최후를 마친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고려때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여몽연합군과의 격전으로 최후를 마친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보배섬 진도에는 남도석성(사적27호)이 있다.

고려때 삼별초(배중손)장군이 여몽 연합군과의 격전으로 최후를 마친 사적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높이가 4m~6m.둘레는 610m의 석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남도석성은 원형의 보존상태가 좋아 사적 27호로 지정하게 되었고, 지금은 진도대교로 연육되었지만 옛날에는 이 땅의 남쪽 끝 낙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은 섬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격전이 있었기에 섬을 지키기 위해 석성이 쌓여졌고 그 석성은 사화와 함께 사적지로 남아있다.

최진옥 선녀화가는 인간 사회의 무상함을 당시의 격전 사화를 회상하면서 남도석성을 화폭에 담았다. 화폭에 나타난 남도석성은 격전의 인생무상보다는 훌륭하고 거룩한 사적지로 나타났다. 석성주변의 황금빛 노란 꽃들은 유채꽃인가 보다. 석성위에 높이 자리잡은 누각은 처마 끝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옛날 격전의 사화를 조용하게 듣고 있는 듯했고 이곳저곳 고목에도 가지마다 잎새마다 그날의 사화들이 머물다 가는 것 같았다.

선녀화가 최진옥은 화폭에 석성과 사화를 읊조리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도 그날의 사화들이 구름을 타고 오가는지 어느새 왔다가 어디론가 가버리고, 오늘은 가는 곳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 당시에도 신비의 바닷길은 있었을 것이다. 보배섬 진도를 그때도 보배섬으로 탐내 빼앗고 안 빼앗기려고 싸우는 격전이 되었기에 석성을 쌓고  공격자를 물리치는 싸움이 계속 되었으리라. 그 당시에는 신비의 바닷길이 있었는데도 세계적인 천혜의 보물인 명소인 줄도 몰랐고 운림산방에서 남종화가 예향의 고장으로 알려지기 이전이요 진도대교도 없어 울돌목을 건너야하는 불편한 낙도에 불과한데 보배섬 진도의 진가를 어떻게 알고 지키고 빼앗으려는 격전이 계속되었을까?

만일 그 당시에 문예기행 보배섬 진도풍경 서울나들이가 진행되었다면 격전도 없고  남도석성 사적지도 없는 보배섬 진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선녀화가는 보배섬 진도의 크고 작은 섬 절경들까지 곳곳을  화폭에 담아가고 있다. 진도대교의 낙조 때를 맞추어 오가면서 또 다른 낙조의 절경 그리고 황홀한 저녁노을을 감상해 보았을 것이다.

볼때마다 다른 절경에 빠져드는  문예기행에 오늘의 낙조절경이 한페이지 더 포개졌다.


남도석성에서 진도대교 황혼의 엘레지

기사입력: 2011/08/09 [17:53]  최종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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